요시다의 적나라한 나날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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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지난번 칼럼에서 「마음대로 칼럼 안에서 인재모집을 하다니!」라고 편집부 분께 호되게 혼날 줄 알았습니다만, 아직 괜찮은 듯합니다. 더 해도 되려나……?(아마도 착각). 격주 연재 7회나 되어서 간신히 2010년 12월 3일부터 2011년 연시에 도달한 일기 같은 칼럼이 되었습니다만, 여기에서부터는 비교적 개발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아지고 템포도 빨라질 예정입니다(어디까지나 예정). 그리고 이번은 조금 탈선합니다(예정은 어디로……?)
『Ultima Online(울티마 온라인)』(이하, 『UO』)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1997년에 운영을 개시하여 지금까지도 운영이 지속되고 있는 세계 첫 대형 MMORPG입니다. 당시, 게임 업계에 막 들어온 요시다입니다만, 업계 여기저기에서 「어쩐지 『UO』라는 것이 대단한 듯하다」라고 발매 전부터 서서히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요시다도 선배와 함께 “β테스트”에 참가해 보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β테스트라는 개념을 몰랐으므로 어쩐지 쓸데없이 두근댔던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무사히 β테스트에 당첨되어, 그, 일본인에게는 미묘한 디자인의 캐릭터 메이킹을 끝내고 로그인한 Britannia 세계는 소문대로 다른 세상의 놀라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셀 단위로 관리되는 내려다보는 형식의 쿼터뷰 화면에는 많은 캐릭터가 오가며 영어 문자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과 같이 로그인한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고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호들갑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감동했습니다. 처음으로 MMORPG 세상에 뛰어들었을 때 분명 누구나 느끼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 감동도 잠깐, 그로부터 30분 정도 후에는 화면으로 뛰어들어온 붉은 이름의 플레이어에게 인사해 보려고 다가갔더니 상대의 몸에서 50개 정도 마법이 날아와서 눈 깜짝할 사이에 죽었지만요. 첫 PK(당하는 쪽)이기도 했습니다(웃음).
이 『UO』는 애초에 『Ultima』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만, 다른 시리즈와 같이 “덕”이나 “업”이 어느 정도 테마이기는 했기에, 당시는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마음대로 용사를 목표해도 되고, 일반 시민을 가장해도 되고, 철저하게 악인이 되어도 되고, 정말 무엇이든 가능. 그렇기에 자칫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듣기 쉽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사람이 롤플레이에 몰두했습니다. 요시다도 물론 그중 한 사람.
β테스트가 끝나고 일이 약간 바빠져서 요시다의 『UO』 정식 서비스 데뷔는 2개월 정도 늦어졌습니다만, 『DIABLO』로 알게 된 동료들과도 Britannia에서 합류. 요시다를 마스터로 길드를 결성해서 길드하우스(※) 구매를 위해 「돈을 모으자!」라고 마음먹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온라인 게임의 꽃(?)인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게다가 아주 교묘한 녀석에게!!(어떤 의미 존경)
당시, 『UO』에서의 2대 돈(골드)벌이라면……
①수사슴/암사슴을 쓰러뜨려서 얻은 가죽으로 여성용 가죽 갑옷을 만들어 NPC에게 판다
②산에서 쇳조각을 캐고 그것을 정련해서 잉곳(쇠 봉)으로 만들어 플레이어에게 판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UO』는 NPC샵에 “재고”와 “입하”라는 개념이 있어서, 일정 시간에 아이템이 입하되고, 재고가 줄어들면 그 아이템의 매수 가격이 상승합니다. ①의 경우는 가능한 한 비싸게 사 주는 NPC를 찾는 것도 꾸준히 돈을 모으는 요령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실수입은 확실히 ②가 더 커서, 당시는 잉곳 1개당 11골드에서 15골드 정도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요시다는 이때 첫 길드 마스터인 것도 있어서 ②를 위해 마이닝(채굴) 스킬을 올리고, 쇳조각을 잉곳으로 변환하는 스킬을 올려서 그랜드마스터 마이너로 매일 골드 벌기에 매진했습니다(주로 회사에서 『UO』에 접속해서). 약 2주간 오로지 마이닝을 하고 잉곳을 빼앗으려고 하는 다른 플레이어(PK)와 싸우며 필사적으로 4000개나 되는 잉곳을 모았습니다. 최저가격인 11골드로 거래해도 44000골드를 벌게 됩니다. 「이것으로 길드 마스터의 체면도 유지되겠구나!」라고 히죽대며 마을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Selling ingots 4000! 13G-15G each!!」 그러자 굉장한 기세로 달려오는 플레이어가 있고(영어권 사람), 무려 1개 16G에 살 테니 전부 한꺼번에 팔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거래가!
요시다는 즉시 트레이드를 개시합니다. 두근두근하면서 트레이드 윈도우를 보고 잉곳을 둔 후, 상대가 놓는 금괴의 산의 그래픽을 바라봅니다. 마우스 오버하자 거기에는 64000골드 표시가. “OK” 버튼을 누르려 하자 갑자기 트레이드 윈도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라?」라고 생각하자 「미안, 실수했어」라고. 바로 다시 잉곳 4000을 트레이드 윈도우에 두고 상대가 다시 금괴의 산을 놓는 것을 보고 드디어 여기에서 쌍방 OK를 눌러 트레이드 성립! 우효- 64000골드! 서투른 영어로 「고마워, 또 잉곳이 필요하면 말 걸어!」라고 채팅을 입력하려 하자 상대방은 「Thanks!」 한마디만 남기고 맹렬한 기세로 떠났습니다. 「어라라, 어지간히 급했나 보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가방 안을 보고 얼어붙습니다. 확실히, 확실히 가방 안에 아까 트레이드한 골드 금괴가 놓여 있지만, 마우스 오버해서 표시된 것은 6골드 표시…….
버그? 응?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혼란스러운 머리로 생각합니다. 어째서? 확인도 했는데? 이 시점에서도 아직 사기를 당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요시다. 자 그럼, 그는 어떤 수법을 쓴 것일까요? 『UO』의 사양을 교묘하게 이용한 방법이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다음 회에도 이어집니다.
※길드하우스……플레이어로 결성된 길드에서 공동구매하여 공동으로 쓰는 집. 게임에 따라서 시스템 서포트되는 것과 마음대로 길드하우스로 공동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UO』는 게임 필드의 대부분 장소에 집을 지을 수 있었기에 자유도는 높았으나, 현실과 똑같이 토지부족에 의한 전매 비즈니스 등이 성행하기도 했다.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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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지난번 칼럼에서 이어집니다. 자 그럼, 『Ultima Online(울티마 온라인)』(이하, 『UO』)이라는 세계 첫 대형 MMORPG 안에서 이것 또한 새로운 사기를 조우하고 만 요시다. 다른 플레이어와 잉곳(쇠 막대기) 거래로 64000골드를 얻어야 하지만, 인벤토리(아이템 가방) 안에 있는 것은 겨우 6골드……. 63994 골드의 사기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자 그럼, 어떤 방법을 취한 것일까요?
『UO』 세계에서는 아이템은 모두 아이콘으로 표시됩니다. 돈조차 아이템이며, 인벤토리 안에 넣어서 늘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습니다. PK(플레이어 킬러)에게 습격받았을 때를 위하여 많은 플레이어는 은행에 돈을 맡기고 정말로 필요한 만큼만 꺼내서 사용하는, 상당히 현실적인 게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요시다에게서 겨우 6골드로 4000 잉곳을 가로챈 사기꾼은 이 아이콘의 사양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UO』에서는 골드의 아이콘이 몇 종류 있었습니다. 1골드를 나타내는 1리트 금 알갱이, 2골드, 3골드…… 그리고 6골드 이상의 골드는 금더미로 표시됩니다(『로드런너』라는 게임의 금괴와 똑같음). 사기꾼은 이 사양을 이용하여 요시다에게 6골드의 금더미를 64000골드라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사기를 친 것입니다.
『UO』 안에서 플레이어끼리 아이템을 교환할 때에는 트레이드 윈도우라는 전용 윈도우를 사용했습니다. 두 개의 윈도우가 있고, 각각 교환하려는 아이템의 아이콘을 그 윈도우에 그래드&드롭하면 상대가 그것을 마우스 오버 등으로 확인하고 아이템에 납득하면 억셉(승인) 버튼을 누릅니다. 쌍방이 억셉하면 아이템이 교환되고 각각의 인벤토리로 아이템이 이동합니다. 물론, 상대가 억셉을 누른 후에 다른 한쪽이 아이템을 조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 자동으로 상대의 억셉이 해제됩니다. 상대가 버튼을 누른 것을 보고 아이템을 바꿔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그 사기꾼은 어떻게 한 것이냐 하면, 우선 요시다가 트레이드 윈도우에 둔 4000 잉곳을 확인합니다. 그 후, 일단은 확실히 그 대금인 64000골드의 금더미를 자신의 트레이드 윈도우에 놓습니다. 요시다는 이 금더미에 마우스오버해서 표시된 64000골드라는 문자를 보고 안심하고 억셉을 누릅니다. 이대로 그도 억셉을 누르면 일체 사기가 없이 교환되었을 터입니다만…….
그는 이것을 억셉하지 않고 캔슬했습니다. 트레이드 윈도우가 사라지고 요시다의 잉곳은 자신의 인벤토리로 돌아옵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미안, 조작을 실수했어」라고 말했기에 요시다는 「그렇구나, 조작을 실수했구나」라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다시 트레이드 윈도우를 열고 4000 잉곳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 그는 트레이드 윈도우에 64000골드 금더미가 아니라, “6골드 금더미”를 둔 것입니다. 아이콘의 겉모양은 완전히 동일. 요시다는 처음에 트레이드 윈도우에 놓인 금더미는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길드하우스 자금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이 대형 거래를 성립시키고 싶었던 요시다는 먼저 확인한 안심감과 초조함으로 “다시 놓인 금더미를 확인하지 않고 억셉을 누른” 것이었습니다.
……물론 분해서 견딜 수 없었고, 사기행위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시의 『UO』는 그야말로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라는 컨셉인 게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요시다는 사기행위를 한 플레이어의 심리조작을 포함해서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플레이하는 게임은 달리 없을 것이다”라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그래도 사기행위는 안 됩니다!)
일하는 틈이나 수면시간을 줄여서 만든 4000 잉곳은 이렇게 6골드가 되고 말았습니다. 길드 멤버에게는 얼굴도 못 들고, 다시 처음부터 필사적으로 벌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도 역시 분함과 놀라움은 도저히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UO』 플레이어는 한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큰 『UO』 전용 게시판에 모여서 게임의 사양이나 PK 피해, PKK(플레이어 킬러 킬러) 방법, 몬스터 사냥법, 돈버는 방법 등을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시다는 이 사기를 당한 체험을 이 게시판에 쓰기로 했습니다. 분한 것은 물론이지만, 『UO』라는 게임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는지 등을 썼습니다. 다음날, 그런 요시다의 글에 달린 동정이나 위로, 그리고 『UO』의 대단함에 관해서 등의 댓글 중에 잊을 수 없는 코멘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댓글 작성자는 큰 일본인 길드의 길드마스터였고, 코멘트 내용은 「몇 개월이기는 하지만, 『UO』 안에서 PK나 사기 등의 피해를 본 사람을 구제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니 꼭 한 번 게임 안에서 만나지 않겠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게임 안에서 만나자 「틀림없이 사기 피해를 보셨군요, 게다가 길드 멤버를 위해 열심히 장사를 했는데……. 만약 주제넘지 않다면 은퇴한 분의 재산으로 사기피해 전액을 보내 드리고 싶은데, 어떠신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응? 생판 남인 내게? 같은 길드도 아닌데? 라고 당황하는 요시다에게 그분은 「Britannia 세상은 힘들지만, 착한 주민도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길드 멤버를 위해 열심히 플레이하실 테니 그것을 돕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요시다는 송구스러워하면서도 그 돈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거기에 더해 요시다를 위해서라며 아주 비싼 크래프트제 풀플레이트아머 전신 세트를 주었습니다. 요시다는 그 갑옷을 이벤트 등을 할 때만 입으며 계속 소중히 사용했습니다. 이후에도 이 분과의 교류는 『UO』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이상 전, MMORPG라는 게임 안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합니다. 그리고 18년이 지나려고 하던 바로 며칠 전, 『신생 FFXIV』 생방송을 하던 때 무려 그 분께서 니코니코 생방송 코멘트로 표시되던 요시다의 당시 캐릭터명을 보고 연락을 했습니다! 『구 FFXIV』부터 열심히 플레이하셨고, 『UO』 에피소드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이 요시다인 줄은 몰랐다고(웃음). 다음에 현실에서 한잔하러 가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어쩐지 기쁘달까 부끄럽습니다. MMORPG는 확실히 무서운 부분도 있습니다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꼭 추억 만들기를 해 주시면 기쁘겠고, 앞으로도 에올제아가 그런 세계가 되도록 더 열심히 하자! 라고 생각한 일이었습니다. 마침표.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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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통산 10번째 칼럼이 되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딱히 아무 변화 없이, 또 적나라하게 쓰려고 합니다. 기억이 맞았다면, 이 호의 발매일은 5월 8일이라는 듯하니, 제 생일은 일과 함께 지나가고, 게다가 시드니에서 PR 업무를 끝내고 너덜너덜해져 있을 무렵이겠군요(골든위크, 그게 뭐야? 먹는 거?).
『신생 FFXIV』의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겸임하게 되고부터 어쨌든 외국으로 갈 기회가 급증했습니다. 특히 비행기를 무서워해서 돈을 내고 탈 것이 못 된다고 마음으로 다짐했던 요시다는 개인적으로도 최대한 비행기를 피합니다. 그런 쇳덩어리가 날 리가 없어!(역설)
그런 말을 했더니, 옛날에 어떤 사람이 「비행기는 사람의 믿는 힘으로 나는 거야. 탄 사람의 대다수가 난다고 믿고 있으니 날아갈 뿐인데, 너 같은 사람이 있으면 추락 위험성이 늘어나니까 절대 함께는 안 탈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잔인한 지인이지만, 확실히 요시다는 기내에서도 침착하지 못하고 거동이 수상해서 승무원이 몇 번이나 말을 걸고, 한잠도 안 자니, 어지간히 위험한 사람처럼 보이기는 할 겁니다.
그런 저라도 일단 게임 제작 프로듀서입니다만, 실은 프로듀서라는 역할을 맡는 것은 이 『FFXIV』이 첫 경험입니다. 당시 『구 FFXIV』의 체제 변경 시, 요시다는 디렉터를 맡을 생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아래와 같은 이유로 프로듀서를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1 게임 수정이나 근본 재건에는 신속한 판단과 결단이 필요하다
2 프로듀서와 디렉터의 의견이 갈라졌을 때에 시간이 낭비된다
3 『구 FFXIV』의 조사 진두지휘는 요시다 단독으로 해 왔으니 그대로 하면 된다
4 근본적인 재건이 완료될 때까지 PR 업무는 동결하는 것이 요시다의 방침이잖아?
5 라고 하시모토(요시히사 씨. 테크니컬 디렉터)와 타카이(히로시 씨. 어시스턴트 디렉터)가 말했다
반대한 것은 미나가와(히로시 씨. 리드UI 아티스트)와 다른 1명. 「지금도 보통이 아닌 노동시간과 판단 속도인데, 추가로 프로듀서까지 겸임하면 요시다가 죽을 거야」라는 것이 이유로, 정말 고마운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괜찮아, 결단이 빠르면 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이 이상 늘어나지 않고, 우리는 그편이 더 좋다. 오히려 프로듀서와 디렉터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시간만큼, 역할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시간이 더 들어」라는 하시모토. 「괜찮아, 괜찮아」라는 타카이(근거는?). 급기야는 당시 사장인 와다(요이치 씨. 현 스퀘어에닉스 이사회장)까지 「음」이라고 말하는 지경. 동지인 프로듀서 이치무라 류타로의 일을 가까이에서 보던 요시다는 처음에는 「프로듀서를 너무 만만하게 본다. 그런 것은 무리야!」라고 반대했습니다만, 마지막에는 「확실히 빠르기는 빠를지도」라는 이유로 결국 프로듀서를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겸임해 보니 “프로듀서”라는 자리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요시다입니다. 게다가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의 프로듀서는 아마도 각자에게 책임범위와 역할, 그리고 프로듀스 방법이 있어서 정의하기가 가장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정말, 어떤 일을 하지?」라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이것은 무엇이든 정의내리고 최저한 그 정의를 만족하며 일을 해 나가는 “정의벽”인 요시다에게 곤란한 사태가 되었습니다. 정의를 내리려 해도 어떻게든 정의할 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① 비즈니스 스킴(모델)을 생각하고 상품을 최대수익화한다
② 예산을 작성해서 배분을 결정한 후, 결재해서 상품 제작으로 돌린다
③ 상품의 PR 계획이나 방침을 정하고 광고 대리점 등과 함께 선전계획을 짠다
④ 상품의 세일즈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숙지해서 시장의 동향과 대조하며 디렉터와 조정을 한다
세세한 태스크를 다 쓰면 한이 없습니다만, 대체로 크게는 이 정도일 것으로 상정했습니다. 그래서 『구 FFXIV』에서 얼마를 썼는지, 이제부터 매달 얼마를 쓸지, 인프라 코스트(서버의 하드웨어 코스트나 전기세, 서버를 둘 토지세 등)로 어느 정도 러닝 비용이 필요한지, 회원 수로 판단할 수 있는 손익분기점은 어디인지, 비즈니스 모델은 이것이 옳은지, 그것을 최대화 할만큼의 유통 루트는 준비되어 있는지 등등, 이것들을 한차례 확인하는 것도 게임 제작과 병행해서 했습니다.
『구 FFXIV』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시작하여 체제를 변경한다 해도 게임이 갑자기 개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점에서 우선 ③은 당분간 게임 개선이 끝날 때까지, 해도 역효과가 된다고 판단하여 동결(“플레이어와 개발팀의 커뮤니케이션”은 다시 별도 칼럼에서). ①은 원래 작은 회사에서 기획을 가져오는 일을 해서 비교적 자신 있었으니 문제없음. ④는 하시모토와 타카이가 말한, 겸임이 가장 효과 있는 부분이므로 여기는 “신생”을 결정한 것도 포함하여,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타이틀로 재개발을 한다”는 전대미문의 결정은 아마도 프로듀서와 역할이 나누어져 있었다면 순조롭게는 결정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그 후에도 방향성으로 몇 번이고 조정이 필요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대 문제점은 ②로, 요시다는 어쨌든 세세한 돈 계산을 못 합니다. 특히 예산과 회계! 학생 시대에 부기(簿記)검정 3급에 3번 도전한 요시다. 불합격하는 것이 더 희한하다는 이 검정에 무려 3번 불합격!(어험!). 그럴 것이, 계산을 하고 있으면 매출과 매입이 10000엔 안 맞게 되어서 다시 계산하면 이번에는 10만 엔이 안 맞는걸……(시험을 포기하고 도중 퇴실했습니다(웃음)). 그런 연유로, 방침을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야! 라며, 지금도 세세한 계산은 어시스턴트 프로듀서에게 꼭 쥐여주고 있습니다(항상 고마워).
『신생 FFXIV』의 프로듀서 겸 디렉터가 되고 3년이 지났습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인생을 걸고 내달려 왔습니다. 지금도 전력 질주 중입니다. 그리고 아주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GDC 2014(※)의 강연을 끝낸 직후,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하네다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술을 퍼마셨는데도 못 자고, 취하지도 못해서 포기하고 비행기 안에서 이 칼럼을 쓰며 문득 생각합니다. 겸임이라. 으-음, 역시 속았어……라고(웃음).
※GDC 2014……게임 디벨로퍼즈 컨퍼런스.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게임 개발자 대상 국제회의.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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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그리고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신입사원 여러분은 슬슬 「이건 아닌데……」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며 5월병(“중2병”의 일종이기도 하다)의 낌새를 보이기 시작하고, 게임업계의 콘솔부문에서는 연말 지옥 스케줄 쇼크에서 간신히 탈출해서 「슬슬 일할까, 하지만 귀찮아……」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일까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2011년 지금 무렵 요시다는 인생 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그야말로 “위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힘들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그런 느낌으로 이상과의 갭과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때의 주요한 평행작업을 큰 항목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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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생판” 설계를 위한 게임 디자인 작업
- 『구 FFXIV』의 개선 계획과 개선 사양 작성
- 공식 포럼 작성과 커뮤니티 대응 방침 변경
- 업데이트 계획 입안
- 그랜드컴퍼니 도입과 메인 시나리오 재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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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구 FFXIV』의 개선 계획”은 문제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전체를 설계하고 난 후 개선을 하지 않으면 임기응변적 수정이 될 위험이 커서 하나의 축을 만들 필요가 있기에, 결국 모든 사양을 설계한 후에 실장을 했습니다. 즉, 아래와 같은 제작 순서입니다.
①최종적으로 어떠한 전투 컨텐츠로 파티 플레이를 하게 할 것인가
②인스턴스 레이드라는 던전의 기초기획을 정한다
③파티 시스템이 어때야 하는지, 사양을 책정한다
④전투 시스템과 액션이 어때야 하는지, 사양을 책정한다
개발 초기 단계의 게임에서는 지극히 정통한 방식이지만, 『구 FFXIV』은 운영 중이었기에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상당한 외줄 타기였습니다. 생각하는 순서는 ①→④이지만, 운영 중이라서 업데이트 간격을 너무 길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패치 실장 순서는 ④→①이 됩니다. ①과 ②를 합친 것이 『구 FFXIV』의 인스턴스 레이드라는 컨텐츠 “제멜 요새”와 “토토락 천옥”, 그것도 당시 가능한 던전 리소스 범위 안에서 만든 것입니다.
당시 전투 디렉터였던 마쯔이(※1)와 곤다이(※2)와 셋이서 『신생 FFXIV』의 기초가 되는 전투 시스템을 고안하고 사양으로 정리하면서, 그것을 『구 FFXIV』의 개선에 어디까지 적용할지를 정해나갔습니다. 특히 『구 FFXIV』의 개선 후의 잡 시스템을 포함한 액션 전부는 거의 곤다이 혼자서 제작했습니다(정말 고생 많이 하게 했습니다……). 2011년 3월의 패치 1.16까지 『구 FFXIV』은 파티를 최대 15명으로 짤 수 있었기에 어떻게 해도 전투가 아기자기한 맛이 없어졌습니다. 확실히, 대규모 전투는 재미있게 느끼기 쉽지만, 극단적인 파티 결성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보스 전투를 제작해도 많은 인원으로 밀어붙이는 전투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고 맙니다. 게다가 케알가를 연타해도 MP가 마르지 않는 『구 FFXIV』의 밸런스…….
또한, 1파티의 최대인원을 『신생 FFXIV』에서 8명으로 할지 6명으로 할지 상당히 고민한 기억이 있습니다. 1파티 = 1컨텐츠 클리어 단위가 되고 컨텐츠의 재미에도, 사람을 모으는 난이도에도 직결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MMORPG 시장은 원숙기를 맞이하여 커뮤니티는 축소경향이 있어 수십 명을 필요로 하는 컨텐츠는 도입 직후는 좋지만, 실장 후 2개월만 지나면 경원시 되는 현상이 보였습니다.
시대의 흐름으로 보면 6명이 타당하다고도 생각했지만, 8명을 1단위로 하면서도 4명이라는 단위도 만듦으로써 솔로/라이트/풀이라는 3개의 전투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으로 8명의 풀파티/4명의 라이트 파티가 확정. 이러한 사양을 꽉꽉 담으면서도, 어쨌든 인터페이스가 나쁘면 전투 컨텐츠를 실장해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판단으로 2011년 전반은 다른 사양에 휘둘리기 어려운 유저 인터페이스 수정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플레이어 여러분은 유저 인터페이스에 치우친 수정에 상당히 안달복달하셨습니다. “원하는 것은 즐기기 위한 컨텐츠”라는 것은 괴로울 정도로 잘 알았습니다만, 컨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하려면 바꿔야 하는 곳이 너무 많고, 하지만 이것을 소홀히 하면 결국 개선은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결과, 당시의 플레이어 여러분께는 정말로 계속 인내를 강요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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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4월 : 패치 1.17 실장
(파티 인원이 15명→8명으로) - 2011년 5월 : 패치 1.17b 실장
- 2011년 6월 : 패치 1.17c 실장
- 2011년 7월 : 패치 1.18 실장
(모든 액션 재검토/인스턴스 레이드 실장) - 2011년 9월 : 패치 1.19 실장
(전투 수정 완료/이프리트 토벌 · 토멸전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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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개선들도 각각을 실장할 때에는 큰 파문도 있었습니다. 전투가 특히 붕괴해 있던(라고 요시다는 생각했음) MP코스트 관련을 재검토하고 “확실히 MP소비양을 생각하며 전투한다”는 RPG로서는 당연한 조정을 할 의도였으나, 이것이 공식 포럼에서는 대반발이 있었습니다(「MP가 고갈된다! 어떻게 할 거냐!」라고).
사람은 그 환경에 장시간 익숙해지면 그것이 좋든 나쁘든 “환경변화”만으로도 강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을 통감함과 동시에 비뚤어진 밸런스를 오랫동안 그대로 둔 것을 깊이 반성한 에피소드입니다. 변화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플레이어 여러분께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비판받을 때도 있고,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며 방치하는 것도 또한 높은 리스크를 수반하게 됩니다.
위에 적었듯이 플레이어 여러분은 게임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당시 그 “순간”의 재미나 스트레스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저를 시작으로 한 개발팀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장기적 시야”로 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고, 이것이 플레이어와 개발자의 사고에 갭을 낳는 최대 이유입니다. 결코 섞일 수 없는 부분이지만, 조금이라도 갭을 메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플레이어의 시점과 개발자의 시점, 쌍방을 균형 있게 유지하면서 여러분과 대화해 나가고 싶습니다!
참고로, 하룻밤 자면 스트레스가 단숨에 없어지는 요시다입니다만, 올해 건강검진에서 「위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지만, 마음대로 나은 것 같네요」라고 진단받았습니다. 힘든 시기이기는 했지만, 자각 증상은 전혀 없었는데(초둔감).
※1……마쯔이 아키히코 씨. 현 『FFXI』 프로듀서. 당시는 체제 변경 후에 『구 FFXIV』의 배틀 디렉터를 담당.
※2……곤다이 미쯔토시 씨. 현 『신생 FFXIV』 배틀 디렉터. 당시는 체제 변경 후에 리드 배틀 플래너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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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_#12 펼쳐보기|가리기|#12
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이번회는 『신생 FFXIV』의 리얼 이벤트인 “Full Actime Time Event in NAGOYA”를 끝내고 행사장인 나고야에서 도쿄로 돌아오는 신칸센 안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벤트에 와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아까 신칸센에 타기 전에 간신히 타이완 라멘은 먹었습니다!)
이 이벤트 안에서 제14회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를 실시했습니다만, 『FFXIV』 넘버이기도 한 14회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플레이어 여러분의 성원 덕분입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게임 업계에서도 당연해진 이 PR을 겸한 개발자나 프로듀서의 라이브 스트리밍 말씀입니다만, 제1회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정확하게는 전 · 후편 2회 방송 중 전편)를 개시한 2011년 10월 4일에는 발매 직전 게임 PR을 제외하면 거의 전례가 없고, 스퀘어에닉스로서도 첫 시도였습니다. 오늘은 단락을 짓는 14회라는 것도 있으니,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의 성립에 관하여 이번과 다음 칼럼을 이용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구 FFXIV』의 시작이 아주 곤란했던 이유로 체제 변경 후에 내건 큰 운영방침 중 하나에 “플레이어 여러분과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있었습니다. 네거티브한 상태였기에 더더욱 앞으로의 업데이트로 무엇이 변하는지, 현재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언제쯤 어떻게 개선할지를 알리는 것은 게임 플레이를 계속해나가는 데에서 플레이어 여러분께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플레이어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고 “프로듀서 레터”라는 형태로 문자를 베이스로 한 발신으로 시작해서, 포럼에 글쓰기도 함께하여 약 9개월간 이것을 지속했습니다.
2011년 10월, 『구 FFXIV』의 개선과 병행해서 진행해온 『신생 FFXIV』을 알릴 수 있는 타이밍이 왔을 때, 당시 요시다 스스로 고안한 것이 대본 없이 플레이어 여러분의 질문에 정면으로 생방송으로 답변하는 스타일의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입니다(지금도 방송 직전에는 상당히 긴장합니다. 「그렇게 안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슬퍼집니다만……).
이 기획을 제안했을 때에는 운영팀 안에서도 미묘하게 당황하는 분위기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쓴웃음). 녹화방송이라면 또 몰라도, 생방송인 경우는 “실언”(지금도 저지릅니다만……)의 위험성이 높으며, 또한, 스스로는 잘 설명했다고 생각해도 표현이 애매했을 때 시청자가 잘못된 해석을 할 여지를 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 스퀘어에닉스의 인상은 “고압적이고 비밀주의(외국 미디어의 표현원문대로)”였고, 애초에 『구 FFXIV』에 화나신 분도 다수 계셨기에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더욱 “신생”을 전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제 말로 당시의 『FFXIV』과 그 너머의 『FFXIV』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전면 협력해 준 스태프 여러분에게는 플레이어 여러분께만큼 감사하고 있습니다.
『신생 FFXIV』의 PR 시작으로써 제가 기획한 것은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 전 · 후편 2편 방송. 전편의 방송 내용은 다시 『구 FFXIV』 당시의 문제점에 관하여 저를 포함한 개발팀과 플레이어 여러분의 인식을 모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지, 또는 어떠한 문제로 그것이 불가능한지를 설명하는 것. 이것에 의해 스퀘어에닉스 쪽도 확실히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수정에 전력을 쏟고 있다는 것,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는 어디인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후편 방송 전에 “『신생 FFXIV』이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을 플레이어 여러분, 그리고 미디어에 발표함으로써 전편 방송 내용과 함께 「근본적인 수정이라고 말했지만, 설마 다시 만드는 거야?」라는 깜짝쇼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참고로 『신생 FFXIV』 고지 사이트가 공개된 것이 2011년 10월 14일. 『FFXIV』에 연관지어 요시다가 14일로 하고 싶다고 해서 정했습니다. 이 이후, 『FFXIV』의 PR이나 이벤트가 왠지 14라는 숫자에 연연하게 되었습니다(웃음). 유래나 언어유희라는 것도 물론이지만, 『파이널판타지』는 역사가 매우 긴 타이틀이고, 그 때문에 “어느 숫자가 최신인지 알기 어려워졌다”라고도 생각했으므로 어쨌든 “14”라는 숫자를 인상에 남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일단) 샐러리맨이고, 대본 없는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것은 (일단) 회사에 확인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후편에는 당시 사장이었던 와다(요이치 씨. 현 스퀘어에닉스 이사회장)의 출연이 필수라고 생각했기에, 우선은 와다에게 기획의 내용과 주안점을 설명해서 찬동을 얻고, 그 후에 광고실과 법무부서에도 이야기를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자 리스크가 있는 기획에 반대하기는커녕 『신생 FFXIV』의 PR과 통지에 상당히 정열을 쏟아주어서 이 점에서도 “회사 전체가 하나 되어”라는 말을 크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두 부서에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지금에 와서 당시 방송을 보면 너무 긴장해서 손이 떨리고 있는 자신이 비추어져서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스퀘어에닉스로서도 업계로서도 첫 시도가 된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 다행히도 플레이어 여러분께는 호평을 받았습니다만…… 역시 여러 가지가 있어서……. 이하, 다음에 계속._M#]n
n[#M_#13 펼쳐보기|가리기|#13
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이번회는 전회에 이어서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 이야기입니다. 2011년 10월 4일 첫 방송을 끝낸 후, 10월 14일에는 『신생 FFXIV』 개발 중이라는 공지를 내보내고 미디어 투어도 해서 프로모션 면으로는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내에서는 비교적 냉담한 눈길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그걸 여기에서 말하는 거냐(쓴웃음)).
요시다는 『FF』의 지휘를 이어받기 전까지 『FF』 시리즈의 넘버링은 고사하고 파생 타이틀 제작에 조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 여러분과 똑같이 단순한 『FF』 팬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레터 라이브 방송 후에 면전에 대고 누군가 말한 것은 아니지만, 「요시다가(또는 『FFXIV』팀이) 또 제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분위기가 사내 일부에 있던 것은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의미로 평범한 반응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회사라는 것은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의사소통은 고사하고 정보공유조차 간단하게는 할 수 없게 됩니다. 당연히 이것을 개선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플로우 구축이나 노력을 하지만, 100%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중에 “새로운 시도”라는 것은 전례가 없기에 그 “시도”의 의의나 의도가 전해지지 않으면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요시다는 외견 면으로(캐릭터 면으로도) 뭐랄까, 경박해 보인달까 뭐랄까(*チャラいというかジャラいというか-(역주)2ch등에서 요시P의 액세서리를 많이 하고 다니는 화려한 외견을 빗대 ジャラジャラ(짤랑짤랑)라고 부르거나 ‘외견이 チャラい(경박하다)’는 말을 많이 함), 그다지 신용이 갈만해 보이지 않으니(자학) 어쩔 수 없으려나…….
자업자득이라고는 해도, 그만큼 스퀘어에닉스 사내에 있어서도 『구 FFXIV』의 발매는 큰 충격이며, 『FFXIV』 팀을 이끌고 있는 이상 고객 여러분이나 미디어 관계자의 신뢰뿐만 아니라 일부 사내에서의 신뢰 회복 또한 필수라고 느꼈습니다.
그러고 보니, 2011년 10월 14일에 “신생” 발표 및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미디어 관계자의 반응도 「제정신이냐?」라는 느낌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웃음).
기자분과 가끔 당시 일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모두 「너무 전대미문이라 무슨 질문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고 합니다(그야 그렇지). 10월 15일에는 북미로 이동하여 외국 미디어에도 『신생 FFXIV』이라는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스퀘어에닉스는 진심입니다」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전했습니다.
다행히 엄청나게 긴장한 상태로(어떤 의미로 플레이어 여러분도) 시작한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입니다만, 호평받은 것도 있어 전 · 후편 2회 방송 예정에서 회수 미정의 부정기 방송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는 “가능한 한 개발현장에서 전달한다”는 컨셉에 제가 집착했기 때문에 스퀘어에닉스 본사 빌딩 요시다의 사무실(※)에서 방송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최근은 출장판 방송도 늘어나서 이벤트 행사장이기도 하고, 니코니코 초회의이기도 하고, E3 행사장이기도 합니다만, 컨셉은 역시 같으며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전하는 분위기는 지켜나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컨셉 덕분에 방송 현장은 여러 가지로 난장판입니다. 기재류는 모두 저희가 직접 사모은 것이고, 방송 기술자에 이르러서는 회사 전체 네트워크 관리부문의 엔지니어에게 「이런 거 좋아하지?」라며 반강제로 자원봉사 참가시키고 있습니다……. 음향은 사운드 디렉터 소켄(마사요시 씨)이 방송에 붙어서 컨트롤. 코멘트 넣는 것은 선전 담당자이고, 질문 낭독이나 모으기는 커뮤니티팀이 담당해서, 그야말로 “수제!”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웃음). 최근은 니코니코 동화를 통해서도 방송하고 있어서 드완고 쪽 분도 오십니다만…….
그러고 보니, 이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에는 스퀘어에닉스 사내의 여러 사람이 게스트로 불쑥 끼어드는 것도 특징입니다. 첫 게스트로 등장한 당시 사장 와다(요이치 씨. 현 스퀘어에닉스 이사회장)는 하우징 컨텐츠만 신경 써서 별명이 “하우징 아저씨”가 되고(모게시판에서의 명명이었을 터) 현 사장인 마쯔다(요스케 씨)는 FPS(일인칭 시점 슈팅)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헤드샷 아저씨”가(위험한 이름……). 참고로 이 두 사람은 『신생 FFXIV』의 엔드롤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Mr. Housing”, “Mr. HeadShot”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p
선전 담당은 더부룩한 파마머리였던 탓에 “애니 선배”라고 불리고(왜 선배였지?), 『시어트리듬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하자마(이치로 씨) 프로듀서는 이벤트에서의 대전에서 진 벌칙 게임으로 기발한(?) 의장과 두발로 등장해 보기도 하고, 『FFXIII』 시리즈에서는 대선배인 키타세(요시노리 씨) 프로듀서도 출연해 주셨습니다.
자 그럼, E3 행사장에서 생방송으로 전달하는 방송으로 프로듀서 레터 라이브도 15회째를 맞이합니다. 이것도 전적으로 플레이어 여러분의 시청 덕분입니다. 결의도 새로이 하고 앞으로도 여러분과 거리가 가까운 방송을! 그리고 스퀘어에닉스의 개그 담당을 유념하고 계속해 나가겠습니다(어라?)
※요시다의 사무실 …… 스퀘어에닉스 본사가 있는 이스트사이드 스퀘어라는 빌딩 18층에 있는 개인실. 언제든 사양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벽 절반이 화이트보드로 되어 있고, 나머지 절반은 거대한 창. 고소공포증인 사람이 일하는 환경으로서는 최악. 오후 8시가 되면 블라인드가 마음대로 내려온다. 이상한 사양……._M#]n
n[#M_#14 펼쳐보기|가리기|#14
요시다는 1997년에 발매된 『Diablo』 이후, 온라인게임에 푹 절은 생활을 해왔습니다만(일은 뒷전), 가장 오래 플레이한 게임으로 『Dark Age of Camelot』(이하, 『DAoC』)(※1)이라는 MMORPG가 있습니다. β테스트 때부터 통산 6년 반 정도 플레이를 하며 그야말로 먹고 자는 것을 잊을 뿐만 아니라, 생활 사이클이 완전히 『DAoC』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기조차 있었습니다. 『DAoC』은 Realm vs. Realm이라는 컨셉을 내건 대규모 PvP(대인전)를 메인으로하는 게임으로, 전 세계에서 많은 플레이어가 쇄도했습니다. 아서왕의 나라 알비온, 켈트의 나라 하이버니아, 북구의 나라 미드가르드라는 3나라로 나뉜 전쟁이 테마로, PvP서버(※2) 이외는 3국 홈랜드에는 서로 왕복할 수 없으며, 3나라의 중심에 있는 프론티어라는 지역에서 격렬하게 전쟁이 치러집니다. 요시다도 일이 바빠서 복귀가 어려웠던 『EverQuest』를 포기하고 신천지인 『DAoC』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EverQuest』보다 푹 빠져서 역효과였던 기분도……).
『DAoC』은 Mythic Entertainment(당시)라는 회사에서 개발/운영되고 있었습니다. Sanya라는 명물 PR담당자가 있어서 외부 포럼에서 질문을 픽업해 공식 포럼사이트에서 개발자의 답변을 올리기도 하고(거짓말이 많아서 “거짓말쟁이 Sanya”라는 애칭도 있었습니다(웃음)), 정보발신이나 플레이어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여 아주 신선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지금 프로듀서 레터를 쓰거나 라이브를 하는 것은 이때의 인상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Mythic은 조크를 정말 잘 아는 회사이기도 했습니다. β테스트가 끝나고 정식 서비스를 개시하게 된 시점이라 여러 가지로 아직 미실장인 것이 많이 존재했던 시기의 일. 레벨캡은 레벨50이었습니다만, 무려 전 클래스의 레벨50 어빌리티가 미실장(레벨50이 되어도 캐릭터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웃음)), 하이버니아에서 플레이를 하던 요시다였습니다만, 하이버니아의 레벨45 던전은 개방되어 있었으나, 아이템이 무엇 하나 드랍되지 않는(설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때의 MMORPG에서는 비교적 당연하게 레벨 후반의 컨텐츠는 미실장에 아이템이 설정되지 않은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습니다. 플레이어도 거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빨리 실장 좀 해라」라고 말하면서도 느긋하게 플레이하던 시대였습니다(조금 부럽네요(웃음)).
PvP 메인으로 싸우는 데에 있어 PvE(몬스터를 상대로한 싸움)로 장비를 갖추는 것은 아주 중요했기에 하이버니아의 고레벨던전에서 아이템이 드랍되지 않는 것은 불리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각 클래스의 레벨50에는 “Epic Armor”이라고 불리는 전용 장비가 있었기에 PvP에 나갈 때는 그것을 장비하고 가면 아직 어떻게든 차이는 메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클래스의 레벨50 액션은 모든 세력에 있어서 “빨리 실장해 주기를 바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Mythic은 정식 서비스 1주일 전 패치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서 실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2주일만 기다려 달라」는 공지를 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2주 후 패치노트에는 「실장이 곤란해졌다, 담당 프로그래머가 죽도록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 2주일만 달라」고 쓰여 있을 뿐. 그러나 또 2주 후의 패치에 「앞으로 1주일 걸린다. 정말로 미안하다」라는 사죄가. 패치노트는 업데이트 항목을 기재하는 것이 다른 MMORPG에서도 통례였기에 상당히 재미있는 전개였습니다. 플레이어도 「뭐, 이제 조금 남았나 보네」라고 낙관했습니다만…….
그리고 그 1주일 후의 패치노트. 거기에는 「각 클래스 레벨 50의 액션 말씀입니다만, 담당 프로그래머가 스케줄을 너무도 못 지키는 무능한 자라서 해고했습니다」라고 쓰여 있지 않겠습니까(진짜입니다(웃음)). 그리고 「새 담당자의 말로는 앞으로 7일 정도면 실장 완료된다고 합니다」라는 추신이. 이것은 플레이어도 깜짝 놀라서 「뭐, 뭐어, 해고했다면 어쩔 수 없나……」라고 묘하게 납득해 버렸고, 결과, 새 담당자 덕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음 패치에서 무사히 실장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패치노트에 쓰는 회사는 전에도 후에도 Mythic밖에 모릅니다(웃음).
『FFXIV』을 담당하게 되며 당시의 『DAoC』 프로듀서나 게임 디자이너와 알게 되어 이때 일을 물어보았습니다만, 전부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 외딴집을 개조하여 거기에 전 스태프가 모여서 일을 했던 것. 메인 서버 프로그래머가 당시 16살의 천재였던 것(이것에는 깜짝 놀람!), 당시 요시다가 만들었던 길드와 요시다의 캐릭터명을 개발팀이 알고 있던 것(마구 PvP를 해대서……) 등 아주 그리운 이야기를 해 주셨고, 지금도 그 교류는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Mythic은 대규모 MMORPG 신작 개발에 실패, 스태프도 서서히 줄어 『War Hammer Online』 발매 전후로 EA에 매수되어 EA Mythic이 됩니다. 『DAoC』 외에 『Ultime Online』도 EA Mythic이 운영과 개발을 이어받았으나, 먼젓번 E3 개막 직전에 EA에서 Mythic을 폐쇄한다는 공지가 있었습니다.
창고에서 시작하여 스스럼없고 유니크, 그리고 매우 정력적인 업데이트를 계속하는 Mythic이었으나, 요시다는 외국의 MMORPG 뉴스 사이트에서 이 폐쇄 소식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유감입니다. 외국 미디어 관계자에게도 요시다가 『DAoC』의 전 헤비 플레이어인 것은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뉴스 사이트가 Mythic의 폐쇄를 알리는 뉴스 타이틀에 「end of an era(시대의 종언)」(※3)라고 붙인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지…….
MMORPG 업계는 아주 좁고, 거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MMORPG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것은 개발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도 미디어도, MMORPG에 관련된 사람은 모두 그렇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회사나 입장은 달라도 모두 어떠한 자극이나 힌트를 얻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요시다 스스로, 여러 가지 온라인게임과 만나고 지금 이렇게 『FFXIV』을 담당하게 된 것은 역시 MMORPG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Mythic의 폐쇄는 섭섭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준 게임 체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계속 소중히 여기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멈추어서지 말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라」, 그것은 요시다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한 기사였습니다.
※1 :Dark Age of Camelot(2001년~운영중)……Mythic Entertainment사가 개발한 MMORPG. 『EverQuest』를 모델로 하면서도 3국간의 Realm vs. Realm을 컨셉으로 한 게임. 「지금도 가끔 복귀하고 싶어진다」(요시다 씨).
※2 :PvP 서버……특정 지역이 아니라, 퍼블릭필드에서 PvP가 가능하게 설정된 특별 서버. 필드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도중 정신을 차려 보니 사람과 싸우고 있는 일이 빈발. 외국에서는 인기 있는 서버 모드. 『FFXIV』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3 :end of an era(시대의 종언)……『구FFXIV』의 피날레로 공개된 세계 붕괴를 그린 트레일러. 그 트레일러 타이틀이 “End of an Era(시대의 종언)”._M#]